지도 위의 여수를 먼저 여행했다
여행 서비스를 만들며 목적지보다 먼저 보게 된 이동과 선택의 기록.
여수를 위한 여행 추천 서비스를 만들 때, 내가 가장 오래 본 것은 바다가 아니라 지도였다. 장소의 이름과 좌표, 이동 시간, 추천 경로가 화면을 채웠다. 누군가에게는 여행의 목적지인 곳이 내게는 먼저 데이터와 로직으로 도착했다.
처음에는 좋은 여행지를 많이 보여주면 좋은 서비스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볼거리와 식당을 모으고, 사용자의 조건에 맞춰 순서를 정하면 여행이 완성될 것 같았다. 하지만 경로를 만들수록 여행은 장소의 목록이 아니라 선택 사이의 간격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바다를 보러 가도 누구는 가장 빠른 길을 원하고, 누구는 자전거로 천천히 돌아가고 싶어 한다. 유명한 장소 하나를 더 넣는 것보다 해가 지기 전에 해안도로에 도착하는 일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좌표에는 없는 것
지도에는 거리가 정확히 표시된다. 출발점과 도착점 사이가 몇 킬로미터인지, 자동차로 얼마나 걸리는지 계산할 수 있다. 하지만 여행에서 오래 남는 것들은 대부분 좌표 밖에 있다.
예정보다 오래 머문 카페, 길을 잘못 들어 만난 풍경, 바람이 너무 세서 잠깐 자전거를 세운 순간 같은 것들이다. 서비스는 경로를 제안할 수 있지만 그날의 기분까지 결정할 수는 없다.
그래서 추천 로직을 만들면서도 모든 시간을 촘촘하게 채우는 것이 과연 친절한가 고민했다. 좋은 일정은 많은 장소를 담은 일정이 아니라, 여행자가 자기 선택을 끼워 넣을 여백이 있는 일정일지도 모른다.
만드는 사람의 여행
개발하는 동안 나는 수없이 여수의 길을 확대하고 축소했다. 섬과 항구 사이의 거리를 보고, 자전거로 이동할 수 있는 경로를 상상하고, 사진 속 해안선을 오래 들여다봤다. 실제 풍경보다 데이터로 먼저 알게 된 도시였다.
화면 속 지도를 반복해서 보다 보면 이상하게 익숙한 장소가 생긴다. 한 번도 서 본 적 없는 교차로의 방향을 기억하고, 가보지 않은 해안도로의 굴곡을 안다. 그것은 여행이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하지만, 아무 관계도 없다고 하기에는 꽤 깊은 시간이었다.
서비스를 만드는 일은 누군가의 다음 장면을 미리 상상하는 일이었다. 여기에서 길을 찾기 어려울 수 있겠다. 이 구간에서는 사진보다 설명이 필요하겠다. 이 사람은 빠른 길보다 바다가 오래 보이는 길을 좋아할 수도 있겠다.
언젠가 지도를 닫고
언젠가 직접 여수에 가게 된다면 가장 유명한 장소부터 찾지는 않을 것 같다. 지도에서 여러 번 보았던 길을 실제 속도로 지나가 보고 싶다. 화면에서는 짧아 보였던 오르막이 얼마나 긴지, 좌표 사이의 바람은 어떤지 확인하고 싶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는 지도를 닫을 것이다. 서비스를 만들며 배운 가장 중요한 사실은 여행이 계획대로 움직이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지도는 출발을 도와주지만 기억을 대신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좋은 도구가 해야 할 일도 아마 거기까지일 것이다. 길을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여행이 시작될 수 있는 곳까지 데려다주는 것.
